혼자 괜찮아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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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볼더에서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산호세에서의 혼자 생활이 참 어렵다. 

혼자 밥 먹는 것이, 저녁에 혼자 있는 것이, 혼자 장 보는 것이 참 낯설고, 의미 없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혼자 있는 것도 잘해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혼자 먹을 장을 보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하려고, 낡은 운동화도 새로 주문했다.

다시 혼자로 괜찮아져야겠다.

부모님과 시간을 함께하며……(1)

원래는 저와 아내 모두 직장을 다니면서 이사를 한다는 것 때문에, 타주로…, 부모님이 한국에서 두달정도 방문하시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는 바람에, 원래의 취지와는 좀 다르게 부모님께서 지내시다 가시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졸업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걱정만 하시다 가는……)

부모님과 또 이렇게 함께 지내다 보니, 여러가지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생각의 타래 중 하나는, 부모님이 원하는 자식으로서의 저의 모습과 제가 되고 싶은 자식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제 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나는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읽은 글 하나가 인상 깊어서 오늘은 일단 그 글을 옮겨 적는 걸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아래글은 한 독일인이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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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으로 한국에 살면서 받았던 가장 어려운 질문 중의 하나는 아마도 ‘한국과 고국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2년 반 전에 한국에 온 뒤부터 여러가지 다른 답변을 해왔지만 대개는 표면적인 차이들이었다.

—중략—–

서양의 전형적인 ‘부모-자식 관계’가 무엇인지 말하긴 어렵지만, 간단히 필자의 가족을 예로 들어 시작하는 것이 가장 쉬울 것 같다. 어렸을 적을 뒤돌아보면,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사랑과 존중으로 키우셨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내가 필요로 할 때 항상 정서적으로 나를 뒷받침해 주실 수 있었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진실된 관심과 지원으로, 나 역시 부모님을 더욱 사랑하도록 만들었다는 말이다.

존중이라는 말은 어렸을 적부터 두분이 나에게 주셨던, 나 역시 책임을 져야하는 한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아이였을 때에도 부모님은 나에게 아기 대하듯 얘기하지 않았고 수긍이 가는 논리적 설명 없이 그저 따라야 하는 명령을 하신 적이 없었다. 대신 두분은 나에게 의견을 잘 정리해서 조용하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전하도록 바라셨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지 우리가 같이 결정을 내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한 번도 부모님에게 체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방임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나와 형 모두 한 번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과, 만든 사람에겐 적용되지 않는 규칙이 아니라 아버지의 선례를 따르며 옳고 그름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체벌 없이 자란 탓에 부모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

오히려 나는 얼마나 바보스러운 짓을 했든 혹은 나쁜 짓을 했든 내가 한 모든 것을 부모님께 다 말씀드렸다. 그래서 내게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언제나 부모님께 충고와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심각한 문제가 생기거나 여러가지로 기분이 정말 좋지 않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하는 곳은 바로 부모님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공생에 대해 전직 판사셨던 아버지께 배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공정해야 하며 각자의 자유와 그 제한선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한 사람이 해도 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어린 나에게 어떻게 설명해주셨는지 기억이 난다. 딱 이 한 문장이었다.

“한 사람의 자유는 그것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때 끝난다”.

—-중략 —–

내 경험을 한국의 많은 부모-자식 관계에 비교해 보면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한국에서 부모와 자식은 보통 동등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으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엄격하게 나뉜다. 부모는 보통 서로 의견을 나누며 열린 대화를 하기보다는 자식에게 복종을 요구한다. 그런 권한을 갖는 이유는 종종 나이가 많다는 것이며, 아이들의 경제적 의존은 힘의 원천이 된다. (나이가 많으면 당연히 아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은 논리적으로 봤을 때 의문스러운 것이기는 하다.)

아이들은 또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배운다. 잘 따르면 상을 주는 대신, 부모들은 종종 아이들을 순종시키기 위해 체벌을 한다. 내가 아주 많이 본 독특한 체벌 중 하나는 감정 체벌인데, 아이들에게 과도한 죄책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중략—–

또한, 부모들은 자신들 세대와 아이들 세대 간의 삶의 차이를 비밀로 하지 않으며, 대신 아이들을 학교나 대학 등에 넣기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지 등을 상세히 얘기하여 아이들에게 빚졌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다시 논리적으로 보면, 아이를 갖는 것은 부모의 선택이지 아이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책임과 의무가 있지만, 아이들은 그런 일들을 부모에게 보답해야 하는 빚을 지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이들의 재정적 의존은 부모에게 힘을 주는 또 다른 원천이다. 잘 발달되지 않은 한국의 학비 대출 시스템으로 아이들은 부모의 재정적 지원 대신 자유를 반납하며 대학 생활을 하게 된다. 또한 비싼 보증금의 렌트 시스템과 아이들에게 부모 없이 쓸 수 있는 저축 예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고정적인 수입이 생길 때까지 독립해 나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당연히 많은 한국인들은 돈을 충분히 벌게 되는 즉시 이사를 나간다.)

비슷한 맥락에서, 비교적 작아서 모두가 서로를 아는 딱 한 도시에 거의 모든 명문 학교와 직업이 다 몰려 있는 것은 아이들이 부모의 지배에서 ‘탈출’하는 것을 더 어렵게 한다.

다른 예들이 많이 있지만, 그 많은 예를 다 쓴다고 이 글이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대신 나의 개인적인 결론은 부모가 자녀를 그런 식으로 대한 결과로, 그들 사이는 영영 거리가 있게 되며, 개인적이지 못하고, 깊다기 보다 조금은 차갑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도 그것이 부모의 뜻에 일치하지 않으면 숨겨버리든지, 거짓말로 덮어버리든지, 혹은 진실로 원하는 것도 아닌 일을 위해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법만을 배우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그 아이들은 자라나서 결국 어른이 되고 한국의 미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라난 방법은 훗날 그들이 배우자를 대하고, 친구, 직장 동료와 상사를 대하는 자세와, 새롭고 독창적이지만 입증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내는데에 대한 생각을 바꾼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긍정적인 것인지 혹은 부정적인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몫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그렇게 대하는 것이 정말 순수한 사랑인지, 아니면 구속인지 하는 문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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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

12월 3일 첫 출근하였습니다.

7년 하고도 반이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우여곡절(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한 이야기를…..) 끝에 집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직장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졸업이라는 매듭을 짓지 못하고 일을 시작하는 상황이라, 별다른 감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쉬는 시간도 없는 소위 live migration인 셈입니다.

학교, 졸업 그리고 지도교수와의 관계보다는, 출근 전주에 작은 사람의 데이케어 문제가 사실은 더 큰 문제였습니다. 제게는……

작은 사람이 이제 데이케어에 나간지 3개월이 넘어가는데, 갑자기 적응이 후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작은 사람이 너무 우니까 데려가라고 연락이 오고, 그녀는 다음 날 아침부터 제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결국 예전에 봐주시던 분께 부탁을 드려야 하는 상황들이, 저희 가정을 걱정으로 가득차게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교수와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힘내자며 가족끼리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하던 때가 바로 그 전날 이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IMG_0739 IMG_0738< 두 여인들과 행복한 저녁 > — 그들은 마주보며 그들의 커피(?)를 마신다

금요일부터 긴급회의가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장모님께서 처형의 출산으로 서부에 와 계신 상황이라 SOS  구조요청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급하게 토요일 Red-eye 편으로 장모님께서 오셨습니다. 지난 주일 짙은 안개로 비행기는 다른 공항에 내리고 비행기는 무려 6시간 가까이 delay 되는 상황까지 생겼었죠..ㅋㅋ

그렇게 온 집안의 협력(?)으로 저의 회사생활 첫 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출퇴근 길 시간을 한시간 안으로 줄일 수 있을지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잘못하면 도로 위에서 두시간도 가겠더라구요.)그리고 부지런히 매듭도 지어야 겠습니다. (이거는 진짜 온 가족의 support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손이 많이 가는 저를 보고 아내는 “최손”이라네요..ㅋㅋ)

제가 일하게 된 곳이 어떤 곳인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해서 어리버리한 상황이지만, 한가지 느낀 것은 아주 멀게 느껴지던 미래의 순간들이 언젠가는 현실이 되고, 또 과거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결국에는 지나가고 말 것들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욕심내는 그랬던 제 모습이, 그리고 그럴지도 모르는 미래의 모습들에 그러지 말아야 겠다, 진짜를 붙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 주입니다.

 

작은 사람의 데이케어 적응기… (1)

이제 작은 사람이 데이케어에 다니기 시작한지 몇 주가 지났습니다.

첫 주에는 매일 조금씩 시간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거의 하루 종일 있다가 집에 옵니다.

여전히 아침에 작은 사람을 떼어 놓고 오는 건 무척 힘들어요.

작년 추수감사절에 찍은 사진만 봐도 완전 어렸는데, 이제는 학교(?)도 가고 참 빨리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목요일에는 환타스띡 피트니스(?)인가 하는 무슨 클래스를 듣는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기마 자세를 열심히 취합니다. 태권도를 가르치는 건 아닌가 싶네요.

지난 한 주 잘 보내는 것 같더니만……..
작은 사람을 데려온 아내의 모습이 뭔가 이상합니다.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하네요.

작은 사람이 클래스 메이트를 깨물어서 사건 경위서(?) 같은 서류에 싸인을 하고 경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예전에 너무 기분이 좋을 때, 엄마 볼을 깨무는 일이 있긴 했었는데, 친구에게 공격용(?)으로 기술을 쓰셨다고 하니 충격입니다.

학교 선생님 말로는 그러면 안된다고 말하고 야단치는데 못 알아듣는 것 같다고 하네요.

당연하죠… 작은 사람은 영어를 못하니까요…ㅡㅡ;

동영상으로 깨물면 안된다는 내용이 없나하고 찾아봐도 없더라구요.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만화를 봤던게 효과가 있었는데 말이죠.

아무튼…. 그 일 이후로 부쩍 작은 사람이 등교 거부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엄마, 아빠 다 학교 가고 본인은 집에 계시겠다고 말이죠……

이렇게 귀여운 녀석이 친구 볼을 깨물었다고 하는게, 뭔가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다신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머리가 복잡합니다.

 

아참…

지난 주에 버지니아 쇼핑몰에 갔더니 비빔밥 집(!) 이 있더라구요. 다음에 꼭 먹어봐야 겠습니다.

작은 사람 걱정하다 끈금없이 먹을거 생각하는 제가 웃기네요..ㅋㅋ

작은 사람과 즐거운 시간들….

엄마와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