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까지 찼나요? ” 네! “

 

 

오늘 오후에 저의 “더 많이 사랑하는 저의 반쪽”** 께서 박사 논문 제본을 마치고 커미티 교수님들 방에 배포하였습니다. 이제 졸업에 정말 바짝 다가 선 셈입니다. 정말 뿌듯할 것 같습니다. 물론 다음 주 시카고에 다녀온 다음에 디펜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워낙에 약한 사람인지라 “더 많이 사랑하는 저의 반쪽” 을 옆에서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에 차네요. 지금 교수와 졸업에 대한 입장차이로 인한 쉽지 않은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터라 하루 하루를 겨우 넘기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오늘만 해도 오전에 “작은 사람”과 함께 코스코에서 장을 보고 “더 많이 사랑하는 저의 반쪽”이 논문 제본을 맡기고 나오길 기다려서 함께 점심을 먹은 후에 연구실에서 프로젝트 결과 슬라이드 작성, 교수와 논문 미팅, 그리고 다음 주 수양회에서 필요한 “밀린” 일들 중 급한 것 마치기로 정신없이 지금까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요즘음 같이 정신 없는 시기에 제가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여러분들을 만나게 될 생각에 더없이 설렙니다.

 

 

 

 

 

** 더 많이 사랑하는 나의 반쪽

아내로부터 “룸메이트”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깊은 우려와 불평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이를 시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체험! 엠뷸란스 그리고 ER

요즘엔 잡인터뷰, 졸업논문 그리고 부모님께서 잠시 와 계시는 이유로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제는 교수님과 졸업에 대한 이야기를 2시간 정도 (선채로…) 하고 난 데다가, 날씨까지 갑자기 더워져서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같이 농구를 하던 친구가 무릎 전/후방 인대가 되는 사고가 있어서 최근에 룸메이트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로 집 앞에 짐을 다니기 시작한 터라,  조금 피곤했지만 다녀 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줄넘기와 에어로빅(?) 같이 열량을 많이 소비하기 위한 클래스에서 잘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상체를 팔로 지지한 채로 다리 운동을 하는 게 있었는데,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나름 열심히 따라하다가 다리의 반동을 왼쪽 어깨가 견디지 못하고 빠져버린 것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어깨가 잘빠져서 수술한 적이 있었습니다 . 보통은 별 문제 없이 제가 해결(?)하는데요. 어제는 왠 일인지 어깨가 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어깨가 빠지면 심한 통증이 생기는데요, 이게 시간을 끌게 되면 참기 힘들 정도로 아파옵니다.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곤 코치와 옆에 같이 수업을 듣던 사람 한,둘이 와서 도와주려고 합니다. 제가 해보겠다고 이야기를 하곤 계속 노력해 보았는데, 잘 안되더군요. 결국 코치가 자기가 도와주겠다며 저를 벤치에 앉히곤 어깨를 넣어주려고 애를 씁니다. 통증이 더 커져 가더라구요. 그리곤…….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바닥에 누워 있고, 레스큐와 수강생 중의 의사 두명이 제게 정신이 드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습니다. 괜찮다고 이제 통증도 가셨다고 이야기하고 앉으려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합니다. 그 땐 몰랐는데, 이미 엠뷸런스가 와서 레스큐가 제게 이것 저것 물어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하고 보니 저는 들것에 누워 있고, 앰뷸런스로 옮겨졌습니다.

앰뷸런스의 뒷 창문으로 짐을 떠나서 집 근처의 병원으로 옮겨지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아…. 내가 몸이 많이 약해졌구나…” 나름대로 통증도 잘 참는 스타일이라고 자부했는데, 이렇게 쉽게 정신을 잃다니 조금 한심스러워졌습니다. “하필이면, 부모님 와 계시는데 응급실 신세라니……” 룸메이트와 부모님께서 놀라실 걸 생각하니 많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참… 앰뷸런스와 그 들것이 차암~~~ 편하더라구요. 구름에 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차에는 에어 서스펜션과 들 것에도 쇽오브저버가 설치되어 있는 듯 했습니다. 도로위의 범프나 아무런 것도 느껴지지 않고 편하더군요…ㅋㅋ.

ER에 들어가서 수속을 마치고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9시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집에 와 있어야 할 시간이어서 급하게 아내에게 메세지를 보내려는데, 그 병원…. 전화가 안 터집니다… 그렇게 이리저리 신호를 찾다가 겨우 통화가 되었는데, 이미 병원 근처라고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오고 있다고…… 에고…. 또 불효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깨 수술하고 두달간 침대에만 누워 있었을 때도 부모님이 참 많이 걱정하셨었는데……

아내와 아버지께 웃어 보이면서 미국이 과잉진료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잠시 어깨가 빠졌는데, 앰뷸런스까지 왔다고……. 아내도 아버지께서 걱정하실까봐 괜히 더 웃으면서 안심시켜 드립니다.

의사가 와서 별 것 아니라고, 통증이 심해지면 혈압이 낮아지고 그래서 잠시 out 될 수 있다고 설명해 줍니다. 저도 그런 것 같다고 쿨하게 나가게 해달라고 말하고, 쿨하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어깨가 약한 부분인데 제가 요즘에 너무 잊고 지냈나 봅니다. 앞으론 조심해야 겠네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가지 걱정이 밀려옵니다.

첫째, 아….. 의료비….. 앰뷸란스 출동하시면 장난 아니라던데……..

둘째, 아  x팔려…… 다음에 다시 짐에 가면 다들 수근거리겠지? 실신남? 떡실신? 영어로 뭐라 그러지? Mr. Out? ㅜㅜ 이거 정말 그나마 그 클래스에서 제일 수업도 잘 따라하고 몸매도 준수한 에이스였는데….. 하루 아침에 위로와 관심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벌써 3월 1일

올해 1/2월은 정말 정신 없이 지나갔습니다. 1월에는 아내의 학회와 인터뷰 그리고 2월에는 이어지는 현지 인터뷰들로 정말 겨우 겨우 살아남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기로 꼬박 일주일을 고생한 다음에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3월 1일이네요.

한해의 1/6에 해당하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 같아서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논문에 실을 실험 데이터 셋을 만들지 못해서 지난 몇 달간 고생했었는데, 이제 어느정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내도 일년간 마음 졸이며 졸업을 준비해 왔는데,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네요.

 

광천김 도난사건

일시: 2012.1.모일
장소: MD
CCTV 캡쳐

아내가 학회 참석으로 4박5일간 집을 비운 사이, 심심한 작은 사람은 저러고 놉니다. 애아빠는 그걸 또 재밌어라 찍고 있구요. 아내의 빈 자리는 큽니다.

가을 낙엽, 운전 조심하세요

동부의 가을은 낙엽이 있어서 특히나 더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이 낙엽이 항상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도로에 쌓인 낙엽은 아주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낙엽위로 운전하실 경우에 조심하세요. 비가 올 경우에는 낙엽이 바닥에 떨어진 바나나 껍질처럼 도로와 타이어의 접지면의 마찰력을 떨어트려서 아주 위험하구요. 비가 그친 다음에 도로가 다 말랐을 즈음에도, 바닥에 붙어있는 낙엽은 빗물을 머금고 있어서 위험합니다.

낙엽이 쌓인 도로위를 다니실 때는 서행하세요~

Steve Jobs Dies at 56

플루 샷과 몇가지 예방 접종 뒤 사흘동안 고열로 고생하던 작은 사람이 조금씩 정상 컨디션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집에서 컴퓨터를 켰더니, 충격적인 기사가 떴더군요. 처음에는 진짜인가 싶어서 서치를 해봤을 만큼 놀랐습니다.  고인은 디자인과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획기적인 변화를 주도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작품(!)들 중에서 유년시절의 저를 사로 잡았었던 컴퓨터들의 사진들을 올려봅니다.

IBM 88 에서 대만산 186, 286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형성하고 있던 시기에 Next Computer에서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workstation 그리고 server 를 만들었습니다. 중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처음으로 Next Computer Workstation 사진을 화장실에서 보고 충격에 휩싸였었던 기억이 나네요.

Next Computer Workstation ’88

고등학교 무렵, 한국에도 맥이 정식 매장을 통해서 판매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TV 광고까지 하기 시작했었죠. 나름 그 당시 샤프한 이미지의 젊은 배우가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요….ㅡㅡ; ). 아직 잡스가 애플에 완전히 컴백하기 전 모델이어서 그런지 애플의 디자인의 느낌이 잘 베어 있진 않지만, 그 당시 pc 들과 비교해보면 당연히 압도적으로 뛰어난 디자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가격으로 4~500백만원이었던 것 같은데요……. 무지하게 비쌌죠……

Power Mac 9600 ’97

그리고 애플 컴퓨터 중에서 제일 쿨~ 하다고 생각하는 것.

Mac Mini 2010

개인용 컴퓨터에서 가장 뛰어난 디자인과 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다음 모델부터는 Super drive를 아예 생략해버렸죠. 같은 구조에서 램용량을 조금 추가하고, optical drive를 없애는 것만으로 mini server 를 판매할 정도로 하드웨어적인  reliability가 높은 제품이었습니다. 2세대 모델이긴 하지만, mac mini 를 3년째 집에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cpu 성능이 많이 필요한 작업보다는 터미널로 많이 작업하다 보니 최적의 제품이었습니다.

사운드에서 스테레오와 FM  radio 퀄러티가 가상의 음과 자연음의 장벽을 뛰어 넘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면, 프린트와 디스플레이의 벽은 150 dpi (dot per inch) 라고 많이 들어왔었습니다. Apple의 retina display가 336 ppi (pixels per inch)라고 하니, 이런 벽을 뛰어넘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은 공도 크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디스플레이는 만드는 회사의 공이 더 크지만, iphone이나 ipod이 아니었다면 그 비싼 디스플레이가 이렇게 빨리 대중화 되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Touch screen 의 대중화에도 큰 기여를 했네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touch screen 시장은 걸음마 단계였는데, iphone& ipod touch 의 큰 성공으로 최소 몇 년은 대중화가 앞당겨진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화면을 넘기고, 화면을 확대/축소 하는 등의 인터페이스의 표준을 거의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Steve Jobs (1955 ~ Oct. 5,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