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여간 끌어오던 아이의 보험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3월에 텍사스에서 같은 병명으로 같은 보험회사에서 reject되었던 뉴스를 접한 이후로 항상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실제로 보험에서 문제가 생겨서 한동안 해결을 위해서 많이 신경써야 했습니다. 알고 보았더니 문제는 retroactive adjustment에서의 너무나도 더딘 진행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collecting agency에 넘기겠다고 나오고, 보험회사에서는 기다리라고만 하는 중간에서 마음 고생을 한 경우였습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니 싱거운 면도 없지 않지만, 참 마음이 무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겪는 과정에서 제 자신이 얼마나 약한지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청구된 의료비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고, 보험회사의 결정에 따라 보험처리가 되던지, collecting agency와 대면을 하던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요. 말로는 세상을 거스르자고 하지만, 세상의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네요.
얼마전 학교에서 친구와 식사 후에 모 고등학교와 모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소위 엘리트 학생, 분들의 직업 선택 경향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의견은 고연봉을 받을 수 있는 진로/직업을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고, 집업을 선택하는 기준이 연봉이라는 점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그 직업에 대한 감정적 비판도 많이 섞였었죠… ) 그 친구는 제게, 어느 직장으로 가던지 직업에서의 성취감 등의 만족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면 당연히 연봉이 많은 쪽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하였습니다. 저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제한된 리소스를 얻는데 최적화 하는데 사용하기만 한다면 사회가 어떻게 되겠냐고 반문하였지만, 그다지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이슈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실 상당히 무신론적인 그 친구에게 제 의견의 바닥에 깔려있는 소명이나 직업관, 더 나아가 세계관을 이야기해야 했었겠지만, 별로 진도를 못 나간 셈입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돌아보면서, 그 친구도 사실은, 다른 여러 일들로 생긴 사회에 대한 여러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을 그렇게 무장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너무 이상적으로만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바마의 의료개혁이 실제적으로 실패하고 있는 가운데, 시스템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의료보험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회보장의 강화가 가져오는 실패도 뻔하니까요. 저는 개개인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회 구성원이 하나 하나 변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변하지 않겠냐구요. 그런데 제 자신이 이런 작은 일에도 너무 나약하고, 시스템은 너무 커보입니다. 세상의 시스템 안에서 최적화를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설득력도 없는데, 어디서 고민을 함께 시작할 수 있을지 이 고민이 많이 되네요……